본문 바로가기
책 읽어 주는 남자/2009년

'09-21 바보가 바보들에게

by Liquid Fire 2009. 9. 19.
728x90



TITLE : 바보가 바보들에게
AUTHOR : 알퐁소(장혜민) 엮음
COMPANY : 산호와 진주
PERIOD : 2009.05.13 ~ 2009.05.14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그분의 말씀과 글을 엮어 만든 책이다.
개독교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기독교를 종교로 가진 나에게 천주교는 좀 다르게 보인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 정점에 계신 분이었던 것 같다.

다른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개신교의 교리와 천주교의 교리는 뭐가 다를까?
신학자들은 뭔가 더 많은 걸 알면서도 일반 신도에게는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우민정책의 일환일까?
개신교는 오로지 믿음, 전도는 강요하지만, 사랑의 실천은 강요하지 않는다.

낮은 자를 위해 오신 예수님인데 벗은자를 입히고 굶은자를 먹이고 다친자를 고치고 하는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할일이 아닐까?

그런분의 말씀이라 비 종교인, 비 기독교인에게도 존경받고, 이런 책도 읽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 복음만을 외치는 개신교는 세상에서 욕을 먹지만 천주교는 다르다.
중생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간 조선시대 불교와 현재의 기독교가 뭐가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했는데...

-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입니다.
-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 기도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가로기르는 것이다.
-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존경, 사랑, 칭찬, 명예, 찬양, 선택, 인정, 인기 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진실, 사랑, 봉사, 용서, 무소유가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글들...

40page
현자(賢者)와 강자(强者) 그리고 부자(富者)
‘현자(賢者)’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것에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강자(强者)’라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이기는 사람입니다.
‘부자(富者)’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의 운명에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유태 경전에 있는 것으로 인생의 지혜를 갈파한 명언입니다. 먼저 ‘현자’는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서 배우는 자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여기서는 배움으로써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배우겠다는 그 자세, 마음의 겸허가 더욱 중요합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인생을 값지게 사는 슬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현자’는 불행한 일에서도 무언가 값진 것, 곧 진실을 배울 줄 압니다. 인간과 인생을 피상적으로 관찰하거나 알지 않고, 보다 깊이 그 신비를 알게 되고 거기서 오는 참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불행한 일에서 오히려 진실을 더 깊이 배울 수 있습니다. “행복은 그대를 속일지라도 불행은 그대에게 진실하다. 그대로 하여금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고, 그럼으로써 그대 자신을 더 깊이 알게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강자’란 자기를 이기는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이겨내도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실패입니다. 그만큼 남을 이기기는 쉬워도 자신을 이기는 것, 즉 자신의 무절제한 욕망, 이기적 자아, ‘나(eog)’를 이기는 것은 힘듭니다. 사람들은 욕망이 달성되는 것을 성공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욕망에 따르다 보면, 결국 그는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모든 것을 다 차지한 다음에도 허무감만 남습니다. 자기를 이길 때에 비로소 행복합니다.
끝으로 ‘부자’는 자기 운명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잘못 들으면 운명론자의 말 같이 들릴 수 있고, 진취성 없고 발전이 없는 말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최선을 다하되, 분수를 알고 주어진 여건에 자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백만장자가 된다고 해도 자기 운명에 만족할 줄 모르면, 참죈 의미로 부자가 아닙니다. 반대로 초가삼간에 살아도 그것에 만족할 줄 알면 행복합니다. 결국 마음의 부(富)인 것입니다.

52page
유머와 농담
어느 영국 시인이 말하기를,
악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기쁨’이고,
그 다음에 싫어하는 것은 ‘좋은 유머’라고 합니다.
유머도 사람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농담’인데, 이는 반반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농담은 사람이 기쁠 수도 있지만,
사람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경솔한 언행’으로
남을 비꼬고 야유함으로써 사람을 웃길 수는 있으나,
언제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이렇게 기쁨은 악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됩니다.
참으로 하느님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65page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입니다.
참된 사랑은 참으로 사랑하겠다는 결심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치의 기준은
그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으나 그 누구보다도 부유했습니다.
그것은 참사랑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나눔의 삶입니다.

70page
사랑은 느낌이 아닌 결심입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잘 압니다. 만일 부부가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부부로서의 도리에 어긋나고 서로가 서로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며,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임을 잘 압니다.
부부간에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가까운 곳, 우리 마음속에 삭여져 있는 것입니다. 혹여 서약에 따라 불변의 사랑을 하는 것이 힘들고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더라도 우리는 이 길을 꾸준히 인내 속에 나가야 합니다.
어떤 선이나 덕도 어려움 없이, 고통 없이 되지 않습니다.
시련을 통해 그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절대적인 사랑과 우리 사진의 취약한 인간성의 간격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사랑은 약속’이라는 것을 거듭 깨닫고 이를 지킨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나는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이요, 모든 인간의 사랑의 근원이 되는 부부 사이에서 금이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또 사랑이 얼마나 인간생활과 가정을 위해 소중한 지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결코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감정에서 시작되고 감정이 식으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하겠다는 결심에서 출발하여 이 결심을 지키는 의지로써 지속되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할 것인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전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결코 내 마음이 내킬 때에만 사랑하겠다. 기분이 좋을 때에만 사랑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83page
영원에의 향수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의 반쪽을 찾는 갈망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쩐지 끌리고 사랑을 짙게 느끼는 상대를 만나면, 바로 천생연분의 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다음에 몇 해를 살아도
자신 안에 여전히 짝을 찾고 있는 심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나 남편이 있는데 사랑하는 ‘님’이 또 있을 것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고독이 있습니다.
이른바 ‘실존적 고독’으로 결코 부정적 의미의 고독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데서 오는 고독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그에게는 무한하고 영원한 하느님의 모습이 깊이 찍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마음속 깊이 영원에의 향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꿈입니다.
이 꿈의 실현이 인간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에게 이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85page
나, 너 그리고 우리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일들에 대해 쉽게, 정치인이라든지 종교인에게라든지 ‘탓’을 남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설령 내 탓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공동체 안에서 모두 ‘탓’을 느끼고 ‘나는 잘못이 없는가’ ‘나부터 교통질서 하나라도 지켜야 되지 않는가’ 하고 생각을 바꾸어 간다면, 우리 사회가 믿고 사는, 서로 돕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원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의 모습에서 지금의 우리 모습과 가장 닮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책임 전가입니다. ‘나 때문에’가 아니라 ‘너 때문에’라고 서로가 아우성을 치고 있는 우리를 볼 수 없습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너에 대한 정의의 판단’보다는 ‘나에 대한 자성과 심판’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너’를 먼저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사상으로 상대방을, 내 이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차를 타는 사람이든, 걸어 다니는 사람이든, 교통법규를 성실히 지키고 실수 할 때에는 지체 없이 용서를 먼저 청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12page
기도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
기도에 대한 책을 읽다가 ‘기도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때, 나는 ‘아! 이것을 몰랐구나. 그 동안, 기도를 하면서 갈증을 해소시킬 시원한 물이 있는 오아시스만을 찾았지, 사막을 건너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위로와 평화를 찾기 위해 기도를 시도해 보았지, 한번도 죽을 각오를 하고 사막을 건너는 생각으로 기도에 임한 적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 청원기도를 많이 합니다. 병고에 신음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건강을 위해,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혹은 사목적 필요에 따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그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하느님이 말씀할 기회를 드려본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친교’ ‘사랑의 나눔’ 또는 ‘대화’라고 하면서,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일방통행입니다. 하느님 앞에 와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일어섭니다.
우리의 기도가 대부분 메마르게 된 것도 너무 일방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마음의 귀를 그분에게 돌리면 결코 메마른 기도에 기치지 않을 것입니다.

150page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예수님은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교사의 물음에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반쯤 죽은 상태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누가 이 가엾은 사람을 도왔나요. 사제와 사제족에 속하는 레위 사람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기도나 제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을 겁니다.
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보살펴 주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선민사상을 갖고 있는 유다인한테 멸시를 받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이 비유는 굉장히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신 이 한마디 말씀에 요약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운동에 대해 잘 아는 게 없는 나로서도 기업주와 정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기계’ 취급 받는 노동자 편을 든 것은 그들이 강도를 만나 쓰러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주와 경찰의 폭력과 허위조작에 쫓겨 울면서 성당을 찾아온 여공들을 내친다면 사제나 레위 사람의 행동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은 노동문제 개입이 아니라 바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이웃사랑입니다.
- ‘기계’ 취급 받는 노동자들의 인권유린에 대해

156page
빈자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수녀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평생을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모두가 외면하는 병에 걸린 사람들,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셨습니다.

항상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가난하지만 모든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계인들에게 존경을 받으시고 살아있는 성인 이라는 칭호까지 받으셨지만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항상 겸손하게 낮추셨습니다.

인도라는 국가에 맞추어 수녀복도 사리모양으로 만들어 입음으로써 종교와 국가를 초월한 사랑을 보이시려 애쓰셨습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

오 사랑의 주님!

존경 받으려는…
사랑 받으려는…
칭찬 받으려는…
명예로워지려는…
찬양 받으려는…
선택 받으려는…
인정 받으려는…
인기를 끌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다섯.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1(175page)
외적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내적으로는 더 심화되고 ‘마음의 문’이
열려서 인생을 더 깊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 만약 시련의 때라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보다 성장시킬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세요.

8(182page)
인간은 영육 일체의 존재입니다.
육체와 영혼의 어느 한쪽이 깨끗하다고 해서 순결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영혼을 건드리지 않고 육신만을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육체를 범했다면 그 영혼까지 침범한 것입니다.
반대로 육체가 깨끗하다 해도 그 마음이 돌 같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없으면 순결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참된 순결은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15(189page)
인생의 의미는 배운다기보다 깨닫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삶은 내가 임의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19(193page)
법은 자유의 남용으로 ‘선(善)’을 외면하고
‘악(惡)’을 행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금 ‘악’을 떠나 ‘선’으로 돌아서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20(194page)
참된 말, 진리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밝혀 줍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따뜻하게 해줍니다.
반대로 거짓말은 사람을 크게 그르치게 할 수 있고,
미움과 질투의 말은 분쟁과 다툼을 일으키고
때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728x90

'책 읽어 주는 남자 > 2009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23 로드(The Road)  (0) 2009.09.19
'09-22 시간을 달리는 소녀  (0) 2009.09.19
'09-20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꺼야  (0) 2009.09.19
'09-19 고민하는 힘  (1) 2009.09.09
'09-18 설령  (0) 2009.09.09

댓글